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교황 요한나 (문단 편집) == 왜 이런 전설이 생겼나? == 여교황의 전설은 아마도 [[카롤루스 대제]]부터 이어지던 [[교황청]]의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카롤링 왕조가 멸망하면서 [[교황청]]의 권위가 약해지기 시작한 데다, 이 당시 [[교황]]의 선발 때 [[교황]]을 [[출산]]에 쓰이는 구멍 뚫린 의자에 앉히는 기괴한 의식[* 요한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, 이것이 [[고환]]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.]이 있었던 것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현재의 대세이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9/0005071385?sid=103|기사]] 여교황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교황들이 돌아갔다는 길도, 처음에는 큰 행렬이 지나가기엔 좁아서 피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. 나중에야 여교황 전설이 퍼지면서 이를 의식하게 되었을 뿐. 이 전설은 오랫동안 사랑받았(?)고, 16세기 이후 [[개신교]]에서 퍼뜨린 게 아니라 중세 중기 이후 로마 시민이든 [[수도자]]든 소설을 썼고, 당시 사람들이 재밌어하며 또한 교회를 조롱하며[* 중세 당시엔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순명하며 교회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다는 편견이 있는데,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했다. 평신도들도 세속적으로 잘 나가는 집안이면 성직자들과 파워 게임을 벌였고, 군대나 강도들이 교회나 [[수도회]]를 약탈하거나 [[사제]] 폭행이 빈번했다.]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본다. 특히나 10세기 창부 정치 시절 [[마로치아]]라는 여성이 교황 [[세르지오 3세]]의 첩이 되어 후임들 시대까지 거의 [[수렴청정]] 식으로 권력을 누려 '여교황'이란 비판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시점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추측한다. 이 외에 현실에서 [[파스칼리나 레네르트]] 수녀는 실제로 여교황(La Papessa)이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실권을 휘두른 적이 있다. 파스칼리나는 교황 [[비오 12세]]의 비서 수녀인데, 비오 12세의 건강이 나빠지자 정치 실무를 파스칼리나에게 모조리 맡기는 사실상의 [[섭정]] 통치를 진행한 것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